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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진 NOW ]
  • 입력 2018.01.16 07:01

불멸의 기업을 꿈꾸는 머크

독일기업의 철학에서 배우는 경영의 정도 #마지막

 

▶ 340년을 이어온 신화, Merck

기업은 누구나 영속성에 관심이 많아서 스스로 연구를 많이 한다. 그래서 일본의 미쓰비시와 미쓰이, 미국의 록펠러 가문 등이 계속 발전하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조사하여 보고하도록 지시하는 CEO도 적지 않다.
독일에는 다른 나라들보다 유독 ‘불멸의 기업’이 많다. 그중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제약·화학회사인 머크(Merck) 그룹은 연구 대상이다. 독일 헤센 주 프랑크푸르트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다름슈타트 시에 있는 머크 그룹은 1668년에 설립됐으니까 2013년 시점에서 보면 무려 346년째 존재하는 기업이다.

머크는 프리드리히 야콥 머크가 1668년 천사약국(Engel Apotheke)을 세우면서 시작됐는데, 1827년 하인리히 임마누엘 머크가 이 약국을 키워 대규모 생산설비를 갖춘 제약·화학회사로 변모시켰다. 1945년에는 폭격을 당해서 회사 건물의 75퍼센트가 무너지는 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머크는 언제나 빨리 변했고, 미래를 대비하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기 위해 노력했다. 세계 67개국에 진출해 4만여 명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고, 2010년 매출은 약 14조 원(93억 유로)에 달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던 경제위기 때에도 머크의 매출은 늘어났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따르면 세계 기업들의 평균 수명은 고작 15년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장수기업에서 배우는 지속성장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기업의 평균 수명(2006년 기준)도 33년(거래소 상장기업 기준)에 불과하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많은 기업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도태된다는 뜻이다. 한 나라도 ‘300년 이상 존속’하기 힘든데 머크는 어떻게 340년이 넘는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일까.

첫째, 사업 포트폴리오를 자신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분야로 한정해 빠르게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지난 6년간의 사업 현황만 봐도 머크는 2개의 주요한 사업을 팔고 2개의 분야를 추가했다. 둘째, 직원들의 전문성이다. 머크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업은 하지 않을 정도로 전문성을 중시한다.

 

▶ 머크의 독특한 가문 지배구조

그런데 사실 이것만으로는 머크를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창업 이후 3대 이상 생존한 가족기업이 드문데, 머크가 300년 넘게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은 가문의 독특성에서 비롯된다는 게 중론이다. 2009년 스위스 IMD(국제경영개발연구원)가 주는‘글로벌 가족기업상’을 받은 머크 가문은 무려 13대째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

우선 표면적으로 머크의 모회사인 ‘E. 머크’부터 살펴보면 머크 가족들이 보유한 E. 머크가 현재 머크 사 지분의 70퍼센트를 가지고 있다. 나머지 30퍼센트는 개인 투자자, 보험사, 투자회사 등 기관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다. 과거에는 머크 가문이 회사 지분을 100퍼센트 소유했지만 1995년 투자확대를 위해 회사 지분의 일부를 증시에 상장해 외부 투자를 받았다.

현재 머크의 지분을 가진 머크가 사람은 130명 정도다. 이들은 가족회의(Partners’ Assembly)를 열어 가족위원회(Family Board) 위원을 선정하고, 이들이 총 9명으로 구성된 ‘파트너위원회’의 위원 중 5명을 임명해 ‘가문(E. 머크)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한다. 나머지 4명은 비(非)머크가 사람들이다. 물론 이들 외부 위원도 머크가에서 임명한다. 머크 가 사람들이 130명이나 돼도 (파트너위원회 위원 5명을 빼곤) 일절 경영에 간섭하지 않는다. 오로지 E. 머크의 파트너위원회가 회사의 주요사항을 결정한다. 독일의 의사결정 시스템은 전반적으로 느리지만 머크만은 신속하다. E. 머크에서 승인되면 그 즉시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머크의 최고경영자(CEO)는 머크 가문 사람이 아니다. 2006년부터 머크를 이끌다 지난해 물러난 칼 루드비히 클레이(64)이고, 현재는 그의 뒤를 이은 스테판 오슈만(58)이다. 이러한 전문경영인이 회사 경영 문제로 접촉하는 머크 가문 사람은 파트너위원회 5인뿐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머크라는 회사의 비즈니스를 잘 아는 사람들로, 늘 새로운 사업 포트폴리오의 방향을 놓고 CEO와 꾸준히 논의해서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많은 기업이 좋은 기회를 포착하고도 결정을 내리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해 결국 기회를 놓치는 일이 머크에선 일어나지 않는다.

머크 가문은 이러한 기업지배구조와 독특한 경영시스템을 어떻게 정착시킬 수 있었을까.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가족의 지분은 가족 내에서만 팔 수 있도록 한 계약 체계다. 이것은 오랜 시간 머크 사 가족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이유로, 지분을 소유한 가족들이 그 지분을 매매하고 나가는 것보다 지분을 가지고 배당을 챙기는 게 더 유리하도록 설정돼 있다.

둘째, 회사 경영에 참여할 대표자를 선출하는 방식이다. 머크 가문 사람들은 오로지 능력이 있는 인물, 그 자리에 합당한 인물을 가족의 대표로 내세운다. 어떤 사람이 ‘특정 계보’에 있다고 해서 가족을 대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힘든 체계란 얘기다. 실제로 머크 가문 자녀가 회사 신입사원이나 중간관리자로 고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머크 가 사람이 머크에서 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다른 회사 등 외부에서 인정받아 머크 사에 들어오는 것뿐이다.

셋째, 머크 가의 자녀 교육이다. 머크 가는 젊은 세대들이 일찌감치 가문의 사업에 관심을 갖도록 만든다. 머크 가 자녀들은 회사 전반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연령대별로 교육 과정을 이수한다. 이를 테면 머크에서 판매하는 항암제(얼비툭스)와 관련하여 자녀를 하이델베르크대학에 보내어 암 관련 강의를 듣도록 하고 수시로 회사의 인턴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게 한다. 다시 말해 기업의 모든 측면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자녀를 가르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이처럼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회사를 이해하는 교육을 받다보니 나중에 회사 지분을 물려받으면서 내야 하는 ‘상속세’ 납부 준비도 우리와는 딴판이다. 머크 가 자녀들은 회사에서 받은 배당금으로 명품 가방이나 시계를 사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세금(상속세)을 내기 위해 어릴 때부터 저축하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머크 가문의 성공의 뿌리는 가문의‘근검절약’과‘기업가 정신’을 중시하는 전통과 문화에 있다고 볼 수 있다.

 

▶ 자신있는 분야에서 혁신을 이어가다

머크는 이런 바탕 위에서 사업 포트폴리오를 제약과 화학이라는 두 분야의 외연을 계속 확장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성장시키고 있다. 즉 기존 사업과 완전히 다른 분야가 아닌, 자기들이 가장 잘 아는 전문분야에서 사업을 확장한다. 이것이 머크의 ‘혁신’ 개념이다. 꼭 새로운 사업을 하거나 새로운 프로세스를 도입하는 것만이 혁신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 머크는 고객과 시장의 요구를 끊임없이 반영하여 때로는 기존의 사업을 과감히 버릴 줄도 아는 것이다.

사업 분야를 표면적으로 보면 머크는 제약과 화학이라는 두 기둥에서 성장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업 모델이 오랜 기간 크게 변했음을 알 수 있다. 머크는 2010년 미국의 생명과학 및 실험 장비업체인 ‘밀리포아’를 인수했다. 밀리포아는 각종 실험 장비를 파는 동시에 바이오의약품 제조기기 분야의 선두업체로, 화학과 제약의 두 분야 모두를 포괄하고 있다. 머크가 집중할 수 있는 사업 분야라고 판단한 것이다. 머크의 혁신은 이런 식이다. 머크는 앞으로도 계속 자신들이 가진 능력을 원동력으로 삼아 다른 기업과 차별화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할 것이다.

실제 머크는 2016년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2016년 머크 그룹 순매출은 2015년 대비 17% 급증한 150억 유로를 기록했다. 가장 큰 원인은 씨그마알드리치 인수에 따른 것으로 이로 인한 매출 증가는 무려 16.4%였다. 영업이익은 34.6% 증가한 25억 유로를 기록했다. 핵심 영업이익 지표인 특별 손익 항목 제외 EBITDA(이자·세금·감가상각 전 이익)는 23.7% 증가한 45억 유로를 기록했다. 특히 헬스케어와 생명과학 부분이 4분기 매출 성장을 견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테판 오슈만 머크 회장은 "2016년은 성공적인 한 해였다. 헬스 케어 사업에서는 신약 2건이 승인 시판을 위한 등록 단계에 들어갔다"며 "생명과학 사업은 씨그마알드리치 통합 이후 빠른 진전을 이루었고 통합 시너지 창출과 함께 예상보다 빠르게 월등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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