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다이어리] 아홉수

유진홈센터 주연경

  이제는 추억이 된 2023년 여름!
유진가족들의 여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유진홈센터 주연경 사원은 장마비가 내리던 어느날, 아무도 없는 서울대공원으로 본인만의 휴식을 찾으러 갔습니다. 주연경 사원은 가장 편안한 힐링은 혼자하는 여행 같다며, 내 느낌대로 자유롭게 행동하는 게 완전한 휴식이자 제대로 된 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는데요. 그때 그때의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데에서 여행의 묘미와 편안함을 느낀다는 주연경 사원!  아홉수를 앞두고 쌓인 고민과 걱정을 비와 함께 씻어낸 주연경 사원의 서울대공원 나들이, 지금 함께 보시죠!


아홉수

서른이라는 나이를 목전에 두고, 걱정과 고민이 많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릴 땐 서른이라는 나이면 굉장히 멋진 어른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난 그때 그대로인데 어려운 고민들만 늘어난 것 같습니다.

이렇게 걱정과 고민이 많을 때는 한달에 한 번 정도 사람들이 드문 곳을 찾아 계속 걷고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곤 해요. 진짜로 발이 아프고, 더 못 걷겠다 싶을 정도로 걷고 또 걷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동안 미뤄뒀던 감정이나 쌓아 뒀던 스트레스들을 꺼내 차근차근 정리합니다. 충분히 사색하고, 고민하고, 비워내다보면 신기하게도 걸음을 멈추었을 때, 또 새로운 목표와 희망을 계획할 힘이 생기더라고요.

이번 8월에는 숨 막히게 덥고 습한 날씨 때문에 짜증과 분노가 한계치까지 쌓인 상태였어요. 그래서 이를 해소할 장소를 찾던 중, ‘서울대공원’ 안내 책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울창한 나무들이 만들어낸 산책로와 유치원을 졸업한 이후로 가 본 적 없는 동물원이 너무 매력적이더라고요. 걸을 거리와 볼거리가 풍부할 것 같아, 곧바로 여름휴가 여행지로 결정했습니다.

하필 제가 여행을 간 날이 재난 문자가 15분 간격으로 울릴 만큼 비가 쏟아지던 날이라서 뜻하지 않게 우중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산을 쓰고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서울대공원 안 산책로를 걷는데 빗소리 때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데도 행복하더라고요. 푸른 풍경을 배경으로 홀로 장화를 신고 발이 아플 때까지 걸었는데, ASMR 같기도 하고 백색소음 같기도 한 빗소리 덕분에 운치 있게 경치를 구경하고, 느낌 있게 사색에 잠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저희 부모님이 보셨다면 청승맞게 뭐하는 짓이냐고 잔소리를 하셨을 것 같은데...이 날은 왠지 쓸쓸하면서도 우울한 갬성에 젖고 싶었던 날이라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거기 서서 뭐하는 거냐 닝겐
거기 서서 뭐하는 거냐 닝겐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동물원에 관람객들이 거의 없었는데, 맹수관에 도착하니 유리 바로 앞에 있는 호랑이를 발견할 수 있었어요. 마치 고양이처럼 다소곳하게 앞발을 모으고 있었는데, 아마 호랑이도 비 오는 날 우두커니 서있는 절 보며 많이 놀랐었나 봐요. 한참동안 호랑이와 눈싸움을 하며, 영화 속 한 장면에 있는 것 같은 기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유리벽에 빗방울이 고여서 제대로 된 교감(?)이나 소통은 하지 못했지만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호랑이의 근육과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유치원생 때 이후로 이렇게 동물을 보고 기분이 들떴던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내내 쏟아지던 비를 거의 4시간 동안 맞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걱정했던 것들이 너무나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어요. 정말 비에 씻겨 내려간 걸까요?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럽던 빗소리도 어느 순간부터는 조용한 적막처럼 느껴졌어요. 그리고 그동안 몰랐던 제 모습도 발견하게 되었어요.

저는 제가 그렇게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인 줄 몰랐는데, 비에 젖은 푸른 숲을 보니 딱 알겠더라고요. 초록색으로 뒤덮인 배경이 그렇게나 위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늘 집이 최고다, 침대가 최고다, 했었는데... 정말 후회했어요. 이 좋은 자연 풍경들을 못 봤던 게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산책하는 내내 모든 풍경이 제 가슴 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가끔 등산을 가든, 공원을 가든, 나무와 가깝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요. 이렇게 조금씩 작은 변화를 맞이하다 보면, 다가올 서른도, 서른 하나도, 좀 더 멋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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