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과 함께 떠나는 육아휴가

유진홈센터 우강훈

저희 집은 휴가를 독특하게 보냅니다. 아내와 제가 번갈아 가면서 휴가를 갑니다. 아이 둘을 데리고 말입니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휴가를 가면, 저는 온전히 회사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휴가(?)를 갖게 됩니다. 퇴근 후 육아가 없는, 육아를 쉬는 ‘육아 휴가’인 셈입니다. 반대로,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휴가를 가면, 아내는 온전히 자기 일만 할 수 있는 휴가를 갖게 됩니다. 비로소 저의 진정한 ‘육아휴가’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저는 아이 둘을 태우고, 새벽에 울산 고향으로 가서 부모님과 함께 울진의 한 캠핑장을 찾았습니다. 가는 길에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좌불상이 있는 영명사에 들렀습니다. 저의 외삼촌이셨던 스님께서 주지스님으로 계십니다. 인사를 드렸더니, 교회에만 다녀본 큰딸이 울음을 터트립니다. 빨리 텐트 치러 가자고 조르는 탓에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출발합니다.

울진 불영 계곡, 아이들과 물놀이 하기에 적합한 얕은 수심의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곳. 이곳에서 부모님과 함께 텐트를 쳤습니다. 6살 많은 큰딸은 계곡을 보고는 흥분 상태였습니다. 15개월 작은딸은 아직 낯이 익지 않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을 거부하고 저에게 찰싹 달라 붙었습니다. 작은딸의 칭얼거림 탓에, 느긋한 독서시간을 갖겠다는 원대한 꿈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계곡에서 2박 3일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계곡에서 놀다 크록스에 끼워둔 반짝이 지비츠가 떨어져 나갔다는 큰딸을 달래다가, 잠은 오는데, 아빠가 안아주지 않는다고 울고불고 고래고함을 치는 작은딸. 배고프다고 울다가 저녁도 먹지 않고 잠들어 버린 큰딸. 잠들 거니까 우유 달라고 다시 우는 작은딸. 둘 다 재우고 나면, 어느새 해는 저물고 깜깜합니다.

독서는 무슨… 흐르는 계곡 소리를 들으며 다시 생각에 잠깁니다. 벌써 이리 나이를 먹었구나. 아이들과 캠핑을 오고, 아버지의 노후를 이야기하며, 갱년기 우울증으로 힘든 어머니를 위로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짠한 느낌과 함께, 뜨거운 것이 올라옵니다. 그래도, 나의 두 딸, 잘 키워야겠다. 사랑하는 두 딸의 좋은 아빠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뜨겁게 올라옵니다.

2박 3일의 캠핑이 끝나고 부모님과 함께 울산에 돌아와 주말을 보냅니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합니다. 6일 만에 복귀한 회사의 사무실이 이상하게 반갑습니다. 한편으로는 잠시 놓은 업무 템포에 잘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 듭니다. 빨리 적응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지배합니다.

그렇게 회사 일의 속도를 맞춰가는 중에 다시 찾아온 주말, 큰딸이 집에서 짐을 막 쌉니다.

“채인아, 뭐해?”

“서천 할아버지 집에 갈 거야. 바다 보러.”

그렇게 주말에 다시, 계획에 없던 휴가를 보내러 갔습니다. 처가인 충남 서천은 바다가 바로 앞에 있습니다. 밤에 산책 가기 정말 좋습니다. 딸을 데리고 밤 바다를 봅니다. 석양이 지고, 수평선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습니다.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큰딸은 밤바다를 좋아합니다. 밤바다를 걷고 있으면 보이는 작은 매점에서 ‘뽕따’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는 걸 좋아합니다. 매점 옆에는 칼국수 집이 있는데, 매출이 엄청나다고 합니다. 주말에는 하루 2천만원이 넘는 매출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 매장이 떠오릅니다. 우리는 매장에서 많은 직원들이 힘내서 일을 하는데, 하루 2천만원의 매출을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씁쓸함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칼국수 가게 이상의 큰 잠재력이 있습니다. 그 포텐셜을 터트리기 위해, 우리는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포텐셜을 더 빨리, 더 강하게 터트리게 하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이내 깜깜해진 바닷가. 철썩철썩~! 거리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생각합니다. 깜깜한 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내일의 뜨는 해를 믿고 그 해 뜰 때를 준비하는 게 나의 일이다. 언젠가 해는 높이 뜰 것입니다. 이미 조금 해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제 곧 높이 뜰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휴가를 끝내고 지금 생각해보니, 인천 연수에도 밝은 빛이 비춰오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휴가도, 꽤 잘 보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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