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공장 취재후기] “우리의 한일합섬을 응원합니다!”

한일합섬은 저에게 섬유회사라는 이미지 보다는 '국민학교' 시절 남자부 고려증권과 함께 쌍벽을 이뤘던 전통의 한일합섬 여자 배구단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배구 한 세트 점수가 15점이었고, 서브권을 지닌 팀의 득점만 인정했던 당시 배구 규칙을 알게 해 준 것도 한일합섬의 경기를 보면서였습니다. 배구단의 해체와 함께 한동안 잊고 지냈던 한일합섬과의 끈을 다시 이어준 것은 동양이 유진의 가족이 되면서부터였습니다.
 

1973년 창단된 한일합섬 배구팀은 김남순, 구민정, 이수정, 최광희 등 대표급 선수들을 배출하였다. 97년 슈퍼리그 1차대회에서는 8게임에서 단 한 세트도 허용하지 않으며 우승자리에 오르는 등 명실상부한 전통의 명문팀으로 인정받았다. (사진제공=대한배구협회)

사실 홍보 일을 하다 보면 계열사 직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기회가 많습니다. 보도자료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관련 내용을 완전히 숙지해야 하기 때문에 담당자와 수십 차례 통화는 기본이고, 엄청난 양의 자료도 주고받기도 합니다. 보도자료의 내용이 전문적인 내용을 담아야 할 경우 저희가 담당자에게 가하는 괴롭힘(?)의 강도는 몇 배나 더 해집니다.

한일합섬 의령공장을 방문하게 된 건 지난 달 진행했던 ‘마스크 대란에 한일합섬 부직포 판매 증가’라는 보도자료 덕분이었습니다.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으로 마스크 판매량이 폭증함에 따라 한일합섬에서 생산하는 부직포 판매가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 관련기사 : '마스크 대란'에 부직포 판매 증가…한일합섬 "공급 원활토록 노력"

보도자료를 준비하면서 한일합섬의 여러 부서 직원들을 괴롭혔던 원죄(?)에 대한 보답과 ‘어릴 적 저에게 배구를 알게 해주었던 한일합섬의 공장을 한 번 가보고 싶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더해지던 차에 한 매체에서 공장취재 요청이 들어와 흔쾌히 오케이를 했습니다.(물론 이런 취재는 홍보팀에서 가부를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해당 계열사에서 최종 승낙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 관련기사 : 마스크용 부직포 생산하는 한일합섬 "코로나로 주문 5배 늘어... 납품가는 올리지 않아"

코로나19로 전국이 떠들썩하던 2월의 어느 날 경남 의령군에 있는 한일합섬 의령공장에 내려갔습니다. 마산역에서 차로 40분을 달려 이곳에 취재를 하러 온 걸 확인하게 한 것은 정문에 도착해서였습니다. 공장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인적사항을 기록하고 발열체크를 해야 했기에 아침 일찍 KTX를 타고 오며 풀어졌던 긴장의 끈이 다시 한 번 바짝 조여졌습니다.
 

시끄러운 기계소음과 제품을 싣느라 분주한 차량들을 상상했던 모습과는 달리 한일합섬 의령공장에 도착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고즈넉한 분위기의 산과 한적한 시골마을 정취였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의 시 <방문객>의 한 구절입니다. 인터뷰를 통해 한 사람이 살아온 삶과 생각을 함께 공유한다는 것은 그의 일생을 상견(相見)할 수 있는 실로 어마어마한 경험이자 더없이 좋은 기회입니다.

공장에서 만난 정용식 상무(공장장)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직장생활을 먼저 시작한 선배로서 회사에 대한 마음가짐에 대해 곱씹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특히 한일합섬이라는 회사가 어려웠던 시절을 몸소 겪었던 정 상무가 느끼는 애사심은 일반적인 직장인들의 그것과는 다소 다른 탓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직원들에 대한 정 상무의 생각이었습니다. 기사에는 다 적지 못했지만 정 상무는 인터뷰 내내 직원들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한 마음을 계속 내비쳤습니다. 그가 직원들을 대하는 자세는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향의 소통에 기반한 것을 중간 중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 상무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상명하복 문화와 비합리적인 권위주의 리더십을 과감히 배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듣는 것이 마음이 따뜻한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습니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대구가 거주지인 직원들이 감염위험으로 집에 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안타깝고 미안하며 또 감사한 마음도 내비쳤습니다.

모범답안 같은 흔한 워딩이 아닐까? 이 말이 진짜인지 확인해 보고 싶은 짓궂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취재를 마치며 돌아가는 길에 서로에 대한 긴장감이 풀어진 틈을 이용해 이 공장 김태우 과장에게 정 상무에 대한 허심탄회 없는 평을 요청했습니다.

김 과장은 “정 상무님은 일에 대해서는 엄격하시지만 전형적인 경상도 ‘싸나이’처럼 절대 뒤끝이 없는 분”이라며 “업무가 끝난 이후에는 혹시 직원들이 상처입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마음을 풀어주시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신다”며 답을 거들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의령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평균 근속년수는 약 17년이라고 합니다. 25년 이상인 직원도 무려 1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지난해에는 정년을 넘어 44년간 근무하다 퇴직한 직원도 있었다고 합니다. 의령공장 직원들 간에는 서로를 너무 잘 알아 이제는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바로 알아차리는 최고의 케미를 보여주고 있다고 합니다.
 

정 상무는 상명하복 문화와 권위주의 리더십을 과감히 배격해야 한다며 직원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듣는 것이 따뜻한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비록 짧은 시간의 의령공장 방문이었지만 ‘참 좋은 사람들이 모여 바쁘면서도 즐겁게 일하는 곳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음에 내려오면 이렇게 금방 올라가지 말고 하루 정도 묵었다 마산 어시장에서 소주 한 잔 꼭 하자”는 마음씨 좋은 동네 형님 같았던 김태우 과장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기회가 되면 의령공장을 꼭 다시 한 번 방문해 볼까 합니다.

의령공장 취재를 위해 바쁜 시간을 내 주신 정용식 상무, 유향열 차장, 박영진 과장, 김태우 과장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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