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없던 시절에는 부모님이라는 세 글자가 이토록 먹먹한 줄 몰랐다. 돌이켜보건대, 나는 스스로 부끄러울만큼 무심하고 무뚝뚝한 딸이었다. 부모의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걸 그 때는 몰랐다. 늦었다면 늦은 나이에 첫 아이를 낳고서야 깨달았다. 내 부모님의 시간은 이미 나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 있었다.
38년 만에 우리 집에 아기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 내 부모님은 딸 몸조리에, 갓난아기 뒤치다꺼리에 밤낮 없이 고생했다. 손주를 본 기쁨에 힘듦조차 잊었을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고생은 고생이다. 엄마는 아픈 기색이 역력했지만 좀 피곤해서 그렇다는 말로 에두르며 나와 아기에게 매달렸다.
병원에서는 대상포진이라고 했다. 엄마는 그래도 막무가내였다. “엄마, 아픈데 무리하지 말고 좀 쉬어. 아기는 내가 보면 돼.” “아니다, 병원에서 주사 한 번 맞고 왔더니 괜찮아졌어. 하나도 안 아파.”
무언가 쿵 하고 마음을 때렸다. 아픈 걸 뻔히 아는데도 내색하지 않는 엄마 모습에 왜 그렇게 가슴이 아프던지. 나는 엄마 몰래 울었다. 딸은 자식을 낳아야 엄마 마음을 알게 된다더니, 이제야 철이 들었나보다.
“자주 안 들러도 아이 잘 돌볼 테니 걱정 말아라.”
아무 상의도 없이 출산 3개월 만에 출근하겠다며 덜컥 애를 맡기는 딸을 부모님은 오히려 다독였다. 당신들 힘든 줄은 모르시고 행여 딸이 피곤한데 걱정까지 할까봐 하는 말이었다. 그 애달픈 노파심 덕에 당신들 손녀는 흔한 감기 한 번 앓지 않고 돌을 맞았다.
38년 만에 자식을 갖고 워킹맘으로 살게 되어서야, 이제 돌아오지 않을 세월 너머를 향해 가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제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 모습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엄마, 아부지. 지난 1년 힘드셨을 텐데 정성스럽게 손녀 돌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