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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진 NOW ]
  • 입력 2018.01.09 10:01

제때 버릴 줄 알아서 성공한 도이치포스트 DHL

독일기업의 철학에서 배우는 경영의 정도 #11

 

▶ 세계 최대 우편·물류기업, '도이치포스트 DHL'

삼성 선대 회장인 호암 이병철은 사업을 계속 확장만 했을 것 같지만, 실은 사업 확장 과정에서 적지 않은 기업들을 정리해 나갔다. 시대의 흐름을 분석하고 예견해서 발전할 수 있는 산업에 대해서는 과감히 투자했지만,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는 사업은 신속하게, 그리고 조용히 털어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경영자는 판단이 빠르고 후퇴도 빨라야 합니다. 상황을 판단해서 안 될 것 같으면 남보다 몇십 배 빨리 후퇴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40여 개 기업을 일으켰으나 지금 20여 개만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정리해가면서 발전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1975년 7월 삼성 사장단회의에서 호암이 강조한 경영방침이다. 독일 국영우체국에 불과했던 도이치포스트(DP)가 220개국에 직원 50만 명을 거느린 세계 최대 우편·물류기업으로 성장한 스토리는 호암의 경영철학과 같다. 한 마디로 ‘제때 버릴 줄 알아야 위기에서 기사회생할 수 있다’는 호암의 관점과 공통점을 갖고 있다.

1490년 프란츠 폰 탁시스가 독일 최초로 근대적 우편 시스템을 고안한 후 그와 그의 후손들이 서유럽 전지역을 서비스하는 택배 네트워크를 완성한 것이 도이치포스트의 시초다. 독일 정부는 우정사업의 경영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국민에게 좀 더 나은 우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1990년부터 우정사업 분야를 단계적으로 민영화했다. 1995년에야 완성된 민영화 작업을 통해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으로 변신한 도이치포스트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대형 물류업체를 인수·합병해 몸집을 키웠다.

대표적인 예가 세계 제일의 특송업체인 DHL을 사들인 것이다. DHL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호놀룰루까지 비행기로 무역서류를 날랐던 미국인 래리 힐브롬이 친구 둘과 1969년에 설립한 회사다. 도이치포스트는 DHL을 인수한 후 2009년 회사 이름을 ‘도이치포스트 DHL'로 바꾸었고, 현재 주요 사업부는 4개(우편, 특송, 글로벌화물, 공급망관리)로 재편돼 있다.
 

▶ 과감한 철수로 위기를 피하다

2008년 도이치포스트 DHL은 비핵심 분야를 매각하거나 정리하는 작업에 돌입했는데, 그 과정에서 국제운송 분야에 집중하기 위해 이미 4조 5,000억 원의 거금을 투입한 상태인 미국 국내 특송사업(택배서비스)까지 포기하기로 했다. 워낙 큰돈을 쏟아부은 사업을 접는 것이다 보니 "좀 더 기다려보자"는 등 회사 안팎에서 반발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미국 특송사업이 그해에만 15억 달러의 적자를 내고 있었고 경제위기까지 터졌기 때문에 도이치포스트 DHL은 과감히 미국 시장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이 실패를 계기로 도이치포스트 DHL은 '그 시장이 독립적으로 수익을 내지 못한다면 운영 측면의 시너지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도이치포스트 DHL이 그랬듯이 많은 회사들이 해외의 다른 회사를 인수하면서 '기존 사업과 합쳐져 어떤 시너지가 생기고 비용도 줄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논리다. 회사가 잘 할 수 있는 분야, 경쟁이 덜한 분야에 집중해야 성공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도이치포스트 DHL은 미국에서는 정리한 국내 특송사업 부문을 인도, 멕시코, 러시아에서는 계속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경쟁이 심하지 않고 그 자체로 이익이 나는 시장들이기 때문이다.

도이치포스트 DHL이 2009년 자회사였던 포스트방크를 도이치방크에 매각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리먼브러더스가 몰락하기 불과 이틀 전에 포스크방크를 도이치방크에 팔았기 때문이다. 매각시점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손실이 너무 커서 도이치포스트 DHL은 크게 흔들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얻는 것보다 버리는 일이 훨씬 힘들다'는 역사적 진리를 교훈 삼아 '때론 포기하는 것이 살 길'이라고 판단했기에 독일에서 편지와 소포를 배달하던 도이치포스트 DHL이 오늘날 인수·합병을 통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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