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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진 NOW ]
  • 입력 2017.11.21 10:40

주도면밀하고 꼼꼼한 준비로 성공 이끈 분데스리가

독일기업의 철학에서 배우는 경영의 정도 #5

▲ 출처: 분데스리가 공식 홈페이지 (www.bundesliga.com)


▶ 분데스리가의 전설 '차붐'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독일 이야기를 하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차범근이다. 요즘 독일 축구에서 한창 주목을 받고 있는 손흥민 선수가 자신의 모델로 차범근을 지목했는데, 아직은 차범근에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1980년 3월 UEFA컵 결승전에서 프랑크푸르트 소속의 차범근은 보루시아MG와 붙었다. 당시 20세의 나이로 ‘게르만의 혼’으로 불리던 마테우스(1990년 월드컵 MVP)가 ‘차붐’ 전담마크의 특명을 받고 출전했다. 하지만 마테우스도 이때는 속수무책이었다. 차붐이 마테우스를 여유롭게 제치고 어시스트를 해 프랑크푸르트가 1 대 0으로 이겼고 차붐은 ‘이날의 선수’로 뽑혔다. 마테우스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차붐은 현재 세계 최고의 공격수다."

1998년에는 독일 축구역사가협회가 20세기 최고의 아시아 선수로 차범근을 선정했다. 차범근은 1977∼1978년 시즌부터 10년간 304경기 출장에 98득점을 했다. 98골은 1999년 스위스 출신의 사퓌자 선수(총 106골 기록)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역대 분데스리가에 출전한 외국 선수 중 최다득점 기록이다. 이 숫자만으로는 차범근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

뮌헨에서 자동차로 1시간가량 북쪽으로 가면 잉골슈타트(Ingolstadt)란 소도시가 있는데, 여기에 독일이 자랑하는 아우디(AUDI) 자동차공장이 있다. 필자는 10여 년 전쯤 첫 출시를 앞두고 있던 A8을 취재하러 그곳에 갔다가 마침 아우디 간부와 저녁식사까지 하게 됐다. 그 자리에서 필자는 아우디 간부에게 “차붐을 아느냐?”고 슬쩍 물었다. 진짜로 차범근 선수가 독일에서 유명한가 하는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었다. 그는 활짝 웃으면서 “차붐은 정말 대단한 선수였다. 나는 정말로 그를 좋아한다.”며 독일 축구의 장점과 특징을 지루할 정도로 늘어놨다.
 

▶ 원칙과 주도면밀함으로 정상에 오른 분데스리가

그런데 분데스리가의 탄생 과정을 보면 호암이 삼성을 만들어나가는 과정과 꽤 닮았다는 점이다. 19세기 후반에 이미 프로 리그를 시작한 영국이 아니더라도 유럽의 축구 강국들은 저마다 유서 깊은 프로축구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독일의 분데스리가는 1963년에야 첫 출범을 했다. 상당히 늦은 출발을 한 것이다.

분데스리가는 ‘전국 리그’라는 뜻이다. 지역주의가 왕성한 나라답게 그때까지 독일의 축구 리그도 각 지방이 독자적으로 지역 리그를 운영하고, 각 주의 우승자들이 시즌 종료 후 챔피언 결정전을 벌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전국적인 축구 리그를 결성하자는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30년대의 제1차 논의는 경제난과 히틀러의 반대로,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우승 직후 활발하게 일어난 제2차 논의는 각 지역 연맹의 반대로 무산됐다. 제3차 논의는 1961년 독일축구협회의 연말 회의에서 나왔다. 세계적인 대세에 따라 전국의 리그 결성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각 지역 축구협회와 구단들은 103 대 26의 압도적인 표차로 분데스리가의 출범을 승인했다.

이 과정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된 사항은 세 가지였다. 첫째, 리그 전체가 독자 생존이 가능할 만큼 수익을 낼 수 있는가. 적어도 장래에 경제적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가. 둘째, 독일의 전지역이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는 지역 안배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가. 셋째, 일종의 공공재로서 독일 국민들에게 축구를 공급하는 한편 각 구단의 운영을 사회 체육과 연계해 독일인들에게 축구에 대한 직간접적인 체험을 동시다발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가.

이때 마련된 운영의 뼈대가 지금까지 별다른 손질을 거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데서 독일 사람들의 품성이 드러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주도면밀하게 꼼꼼히 준비하고, 일단 시작한 뒤에는 원칙을 철저히 고수한다는 점이다. 다음의 사례가 증명하듯 독일은 출발이 상당히 늦었지만 이런 방식으로 저비용·고효율 구조를 이룰 수 있었다.

독일이 통일된 것은 1990년 10월 3일의 일이다. 이때 독일축구협회는 책상서랍 속에서 수십 년 전에 기안해둔 서류 한 장을 꺼내더니 이듬해의 리그 운영 원칙을 천명했다. ‘1991∼1992년 시즌부터 서독과 동독 리그를 통합하고 1부 리그 팀 수를 18개에서 20개로 늘린다. 새로운 1부리그 진입권은 지난 시즌의 동독 리그 1, 2위 팀에게 주고, 3∼8위 팀에겐 2부 리그 진입권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분데스리가는 비록 다른 나라 리그에 비해 출발이 늦었음에도 꼼꼼한 준비 과정과 원칙 고수에 힘입어 유럽 5대 프로축구 리그 중 수익이 단연 최고다. 2011년 6월 10일 미국 회계컨설팅 전문업체인 딜로이트 자료를 인용한 AFP통신 보도에 따르면 분데스리가의 2010∼2011년 시즌 순익은 1억 3,800만 유로(약 2,170억 원)를 기록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는 1억 100만 유로(1,586억 원)의 흑자를 기록해 분데스리가의 뒤를 이었다. 유럽 5대 리그 중 프랑스 리그 1,이탈리아 세리에 A,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등 나머지 세 곳은 모두 적자를 면치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리그 1과 세리에 A는 모두 1억 유로(약 1,570억 원)가량의 손실을 본 것으로 드러났다. 프리메라리가는 자세한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흑자를 거두지는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6년까지 매출은 유럽 5대리그가 모두 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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