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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진 NOW ]
  • 입력 2017.11.07 07:00

직원이 행복해야 기업이 장수한다는 파버카스텔과 비 브라운

독일기업의 철학에서 배우는 경영의 정도 #3


▶ 유서 깊은 직원 복지의 선두주자 "파버카스텔(Faber- Castell)"

직원의 행복에 대해서라면 남다른 독일 기업이 있다. `종업원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훈이다. 이것이 연필 하나로 250년의 전통을 지켜온 파버카스텔(Faber- Castell)의 장수 비결이다.

뉘른베르크 인근 소도시 슈타인에 있는 이 필기구 제조업체는 현재 8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가족회사다. 파버카스텔은 매년 18억 개의 연필을 생산한다. 연필 18억 개를 한 줄로 늘어놓으면 지구에서 달까지 닿고, 지구를 네 바퀴 돌 수 있다고 한다.

이 회사는 연필로 출발해 오늘날엔 볼펜, 만년필, 지우개, 그림물감, 색연필, 파스텔 등 각종 문구류를 만든다. 작은 연필에도 수백 가지 기술혁신이 반영돼 있다. 파버카스텔의 연필심은 글씨가 부드럽게 써지면서도 3킬로그램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강도를 지니고 있다. 이런 특성은 흑연과 흙의 배합비율을 비롯한 생산비법에 있고 모두 특허로 보호돼 있다. 이를 테면 파버카스텔이 자랑하는 ‘그립 2001’이라는 삼각형 연필은 특수 플라스틱으로 이뤄진 오톨도톨한 검은 돌기가 연필 옆면에 붙어 있다. 손에서 연필이 미끄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미세한 점자를 연필 표면에 붙이는 특수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1761년 설립돼 2011년 회사 창립 250주년을 맞은 파버카스텔이 갖은 역경을 극복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4대 경영자 로타르 파버의 역할이 컸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명품 연필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샘플 박스를 손수 만들어 세계 시장을 개척했다. 1849년 뉴욕지점을 시작으로 파리, 런던 등지로 시장을 넓혀갔고, 질 좋은 흑연을 구하기 위해 시베리아 광산을 개발했다.

로타르 파버는 심혈을 기울여 연필을 만들었지만, 사실 연필보다 더 신경을 쓴 부분은 직원들이었다. ‘종업원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흑연을 써도 절대로 좋은 연필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 로타르 파버는 직원 임금을 획기적으로 올리고, 독일 최초로 근로자 복지를 위한 보험까지 고안해냈다.

또 누추하고 비좁은 집에서 어렵게 사는 직원들의 생활상을 곁에서 지켜보고는 회사가 있는 슈타인에 500여 채의 넓은 현대식 사택을 지어 직원들에게 제공했다. 이 사택은 100년이 넘은 집들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깨끗하게 보존돼 있어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19세기 중반에 추진된 로타르 파버의 ‘종업원 사랑'은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화제가 됐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가 특사를 보내 파버의 경영비법을 벤치마킹했을 정도다. 고품질의 제품을 만들어내기에 앞서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경영원칙이야말로 파버카스텔이 250년을 버티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선 비법인 셈이다.

파버카스텔은 전세계적으로 120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는데, 2010년 매출액은 약 7억 유로를 기록해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생산거점은 15개국에, 판매그룹은 23개국에 보유하고 있다. 한국 등 아시아 시장이 중요해지면서 파버카스텔의 롤프 시퍼렌스 사장이 지난 2010년 한국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시퍼렌스 사장은 파버카스텔의 장수 비결에 대해“큰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매일 작은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꾸준한 노력이 쌓였을 때 스토리 있는 명품 브랜드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내부고객 만족경영'으로 선도하는 기업 "비 브라운(B. Braun)"

독일의 비 브라운(B. Braun)이란 글로벌 기업도 직원 사랑이 둘째가라면 서럽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북동쪽으로 130∼14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카셀 시는 인구 20만 명의 아담한 소도시다. 중세 시대부터 발전해온 도시라서 도심 곳곳에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많다. 필자가 카셀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 한국인 성악가와 비 브 라운이란 기업 때문이었다.

필자는 독일에 거주할 때 슈투트가르트 극단 소속의 한국인 바리토너 류동직 씨 가족과 친분을 쌓으며 지냈다. 그는 슈투트가르트 극단에 오기 전 카셀 극단에서 수년간 활동했었다는데 사실 그 말을 듣고서 카셀이란 도시를 처음 알게 됐다. 이후 카셀 시내를 둘러볼 기회가 있어서 시내에 들어서니 도로 표지판 곳곳에‘브라운’이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카셀은‘비 브라운 시티’로 불린다고 했다.

비 브라운은 인류의 의료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기업이다. 세계 최초로 링거 주사액, 수술 부위를 꿰매는 데 사용하는 멸균 흡수 봉합사, 정맥 유도관, 인공관절, 투석기 등 숱한 발명으로 인류의 생명을 연장시켰고, 인간을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시켜왔다. 전세계에 3만여 직원이 근무하고 있는 비 브라운은 의료 소모품만으로 2000년 이후 매년 4조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특히 170년이 넘는 기업 역사상 한 해도 빠짐없이 흑자를 냈는데 그 비결은 혁신 덕분이다. 치료와 병원 업무의 능률을 개선시키는 유용 한 제품 개발과 서비스 제공에 혼신의 힘을 다한 결과란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비 브라운은 2003년 ‘독일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 2005년 ‘독일 최고의 기업’으로 선정될 정도로 회사 분위기가 가족적인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그것이 가족기업의 한계를 극복한 요인이기도 하다.

1979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는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 루트비히 게오르그는 창업자의 4대손으로 회사 지분 100퍼센트를 소유하고 있 다. 이 회사는 가족기업으로서 단기 실적에 일희일비하는 경영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자립적인 관점에서 경영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가족기업은 직원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CEO 자리를 넘볼 수 없기 때문에 썩 좋은 것이 아니다. 미국식 경영기법과 비교하면 사실 비 브라운의 성공 비결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회사는 ‘노동의 양보다 창조적인 질’을 요구하는 ‘전문지식의 공유’와 ‘일과 가족생활의 균형’을 중시함으로써 놀라운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근무 형태의 유연성은 비 브라운의 최대 장점이다. 국내 기업들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200개의 서로 다른 유연근무 모델이 있고, 60개의 교대근무 모델이 있다. 파트타임제도 또는 유연근무제도를 도입해 직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일하도록 하고 있고, 이를 통해 조화롭고 풍요로운 삶, 즉 삶과 일의 균형을 추구하는 가운데 창의력이 샘솟도록 하고 있다. 엄격한 출퇴근 시간, 정해진 근무 장소, 일과 여가의 확연한 구분은 비 브라운이 가장 싫어하는 말들이다.

루트비히 게오르그 회장은 ‘고객 만족경영’, 그중에서도 직원들을 중시하는‘내부고객 만족경영’을 강조해 독일에서 상당한 존경을 받고 있다. 그 명성에 걸맞게 게오르그 회장은 2003년 독일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아 독일 중소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도 했다. 사실 그는 막강한 권한을 쥔 오너임에도, 각국의 자회사를 방문할 때면 항상 적어도 6개월 전에 자신의 방문 기간이 자회사 사장의 개인 휴가와 겹치지 않는지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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