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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진 NOW ]
  • 입력 2017.09.05 08:00

저 일 잘한다고 하셨잖아요?

기업커뮤니케이션 #12 (마지막)


찬바람이 불면 목소리와 표정이 나긋나긋

웬만한 조직에서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고분고분 달라지는 마법의 시기가 시작된다. 상사에게 거슬리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시키는 일은 군소리 없이 하게 된다. 연말 인사 고과의 시점이 다가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다면평가 방법을 도입하면서 상사 한 사람이 팀원들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전방향 평가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자기 평가, 상급자 평가, 동료 평가, 하위자 평가 등등 누구라도 어느 누군가를 평가하게 된다. 물론 그 중에서 직속 상사가 자신을 평가하는 것이 가장 무섭다.

몇 해 전 지인들과 저녁을 먹고 있는데, 옆자리 직장인들의 대화에 귀가 쫑긋 했던 적이 있다. ‘우리도 저랬었지’ 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서 하던 대화를 멈추고 엿듣기 시작했다.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 입은 젊은 친구들이었는데, 듣다 보니 이제 겨우 입사 2~3년차 정도 되는, 사회초년병 물을 갓 벗은 회사원 셋이서 술기운 탓인지 살짝 흥분하여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에 어렵사리 취직을 했고, 거기다 마케팅본부의 기획실에서 근무하면서 남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스스로는 너무나 불행하다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며 고민하고 있었다. 처음엔 회사 이름을 들었을 때는 지인들이 모두 ‘저런, 배가 불렀구먼’ 하는 소리를 동시에 하기도 했지만, 듣다 보니 공감이 됐다.

입사 첫 해에는 물불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연말에 팀장 인사고과에서 B를 겨우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직후에 본부장이 부르더니 ‘진급을 해야 하는 인원들이 몇 명이 있어 고과를 한 등급 내려야 한다’면서 ‘내년부터는 특별히 성과에 대해 챙겨주도록 하겠다’고 했단다. 그런데 이듬해 중반쯤에 조직개편이 되면서 본부장은 다른 데로 가고, 자신도 다른 팀으로 발령이 났다. 새 팀과 새 업무에 적응해가며 시키는 일뿐만 아니라 스스로 일을 찾아가며 죽으라 열심히 했단다. 아직 서먹한 관계인 팀장이 얼마 전에 부르더니 또 다시 팀 내 진급자 등을 핑계 대면서 미안하지만 C를 줬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우리도 저 때는 저렇게 비분강개 하곤 했지, 살다 보면 더 한 일이 수두룩한데.’ 뭔가 끼어 들기엔 아니다 싶어, 사람들의 대화는 되돌아왔다. 이미 모두가 20년 이상을 회사라는 조직 속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일행 중 대부분이 비슷하게 당했던 경험이 있었고, 그리고 이젠 그렇게 해야 하는 입장에 처한 사람들이었다. 뭐라 말하기 껄끄럽기는 다 마찬가지였다.

연간 업무는 쪼개면서, 왜 연간 고과는 한꺼번에?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 같은 경우는 1년을 넘어 수년간 이끌어 가야 하는 일도 많다. 1년짜리 프로젝트라고 1년만에 종합하는 법은 없다. 제대로 일을 잘 하는 조직이라면 하루하루 보고서를 취합하고 그에 대한 반성과 개선점을 찾아 나간다. 그게 일을 쉽게 해 나가는 방법이다. 그런데 만약에 1년치를 한꺼번에 처리하고자 한다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고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아무리 크고 힘든 일이라도 쪼개고 보면 작은 일들로 나뉜다. 그래서 조직이 필요하고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조직이 인사고과라는 것은 평소엔 말도 꺼내지 않고 있다가 연말에 몰아서 처리한다. 연례 행사가 되다시피 해서 연말쯤에서야 상사는 팀원들의 자기평가를 바탕으로 불러 얘기한다. 일 년치를 몰아서 심각하게 평한다.

‘김 과장은 상반기에는 어땠고, 하반기 프로젝트에서는 또 어땠고’라는 식이다. 사실 업무 대부분은 누구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팀의 일이었고, 상사가 지시하고 이끄는 대로 이행한 것들이다. 성공적인 업무를 쭈욱 진행해 왔고 중간 중간 ‘잘 했다’ 또는 ‘수고 했다’며 이행에 대해 긍정적인 신호를 받았던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 년치를 몰아서 하게 되는 상사의 얼굴은 그때와는 달라진다.

평소 하던 말과 달리 어느 순간에 가서는 일관적이지 못한 상사는 결국 팀을 망치게 될 수 밖에 없다. 팀원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보게 될 때, 내색은 않더라도 불신의 골은 가늠할 수 없게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절대평가와 상대평가를 조합한 복잡한 인사평가에서 상사는 모두에게 후한 평가를 해줄 수 없는 입장은 있다. 또 진급 시기가 된 팀원이 있다면 그에게 조금 유리하게 하는 것도 ‘정’으로 뭉쳐진 우리 사회의 긍정적 측면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연말에 한꺼번에 몰아서 피드백을 하라고 인사고과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평소에 지속적으로 팀원들에게 피드백을 하고 공감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연장 선장에서 마무리 하는 것이 인사고과라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년 동안 자신을 믿고 따라온 팀원들에게 막판에 가서 여기가 아닌 것을 이해하라고 할 수는 없다. 낯선 초행길에 믿고 따라갔다가 엉뚱한 방향으로 안내하는 네비게이션이라면, 누구나 바꿔 버리고 싶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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