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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진 NOW ]
  • 입력 2017.08.29 08:08

쿠션에 세 번 이상 맞아야 게임 끝나

기업커뮤니케이션 #11


완벽하게 해서 한번에 통과하려는 욕심이 일을 망쳐

2013년부터 프로스포츠단을 운영했다. 엉겁결에 프로스포츠단 인수는 했지만 그룹 내 반대 기류가 심상찮았다. 거기다 경영진이 바뀌면서 이전에 추진 하던 것들이 죄다 틀어졌다. 아주 사소한 것들도 진행이 쉽지 않았다. 당시 가장 시급했던 문제는 선수들과 연봉 계약을 체결해서 6월 말까지 연맹에 보내는 것이었다. 기한 내에 계약서가 도착하지 않으면 프로선수는 그 해에 실직자가 돼야 했다.

예산이 없었지만 연봉 인상이 필요했다. 몇몇 핵심 전력 선수들의 다가올 FA(Free Agent)를 대비한 방어막이 필수였다. 당연히 연봉 인상 근거로 '각종 정확한 수치와 통계 자료’가 요구됐다. 맞는 말이긴 했지만 막 인수한 상황에서 자료도 문제였지만, 프로스포츠에 대한 낮은 이해도와 인식이 더 심각했다. 또, 그 즈음 엉뚱한 경영 이슈가 터지기도 했고, 되팔라는 지시도 떨어져서 하마터면 스물 다섯 명의 프로 선수 및 코치진들이 무직의 위기에 몰렸다.

열흘도 남지 않은 동안, 바쁜 여러 경영진을 일일이 설득하고 절차를 밟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멋지게 자료 만들어 브리핑하고 깔끔하게 재가를 받을 계획이었지만, 첫 보고부터 막혔다. 해서 작전을 바꿨다. 있지도 않는 각종 성적 통계와 분석자료에만 매달릴 수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결재나 보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부에서 입수한 각종 정보 사항을 슬쩍슬쩍 흘렸다. ‘연맹에서 평가하는 가장 우수한 선수입니다.’ ‘경쟁 구단에서 눈독 들이고 있습니다.’ ‘실력에 비해 연봉이 너무 낮아서, 내년 FA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열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다고 했던가, 처음에 힘든 회사 사정에 연봉 인상 얘기를 꺼냈을 때 펄쩍 뛰던 사람들이 며칠 지나지 않아 오히려 먼저 얘기를 했다. "아무래도 걔는 연봉을 좀 올려줘야겠지?" "걔 노리는 팀들이 많다며?" "FA가 언제야?" 

결국 며칠 동안의 전략이 효과를 보여서 내부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빨리 기안 가져와, 사인해 줄 테니.”
그 뒤론 일사천리였다. 인상된 계약서에 선수들 사인을 받아서 보내는 데 이틀에 끝났다. 지금이야 웃지만, 그때는 식은 땀 나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마감시간 딱 맞춰 올리는 건 곧 능상

일 잘하는 목수와 그렇지 못한 목수의 차이는 목재를 자르고 다듬는 데서도 나타난다. 목재와 목재를 연결할 때 일 잘하는 목수는 첨부터 정해진 치수 그래도 다 잘라 버리지 않는다. 약간 여유를 두고 맞춰가면서 필요한 부분을 조절해 나간다. 습기에 따라 미세하게 늘어나고 줄어듦도 고려한다. 반면 서툰 목수는 첨부터 재단한 대로 다 잘라내 버리고, 나중에는 헐거워진 틈을 메우려 허둥댄다. 자로 잰 듯 다 잘라내는 것이 빠르다고 생각하겠지만, 기둥과 보를 연결할 때 약간의 여유를 두고 아귀를 맞춰가며 다듬는 것이 완성도를 높이게 된다.

회사 일도 마찬가지다. 자료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목적에 한껏 시간을 다 써버리고 마감 기한에 딱 맞춰서 단번에 기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일 잘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일을 처음부터 진행한 담당자들이야 내용도 잘 알고, 서둘러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마감 기한이 닥친 서류를 내민 순간 사인만 해야 하는 입장은 참으로 난감하다. 일은 진행한 사람이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결정한 사람이 책임을 지는 것이 순리다. 그런데 처음 본 서류를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사인만 하고 나서 책임까지 져야 한다면 쉽게 납득할 사람은 없다.

직속 상관인 팀장을 제대로 납득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그 서류를 다시 그 윗선의 경영진들을 납득시켜 오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급한 상황일수록 일의 전후 사정을 공유하는 노하우가 필요하다. 미리부터 문서로 깔끔하게 정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구두로 간단하게나마 공유해서 당신 편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라며 의견을 구하는 것이다. 일이 막혀서 방법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런 동의를 구하면서 공범자가 된다. 그리고 공범자가 이후에는 대변인이 된다. 독감이 기승을 부리기 전에 미리 예방주사를 맞듯, 일의 경중에 상관없이 사전에 공유하고 의견을 묻는 것만으로도 대변인으로 만들 수 있다.

직장 생활 오래한 사람들이 가장 곤혹스러워 하는 것이 예고 없이 벌어지는 낯선 상황이다. 눈치만 보다가 마감이 임박한 일에 대한 서류를 팀장이나 경영진이 퇴근하기 직전에 들고 가서 엄벙덤벙 사인만 받아온다면, 그 일이 잘 못 됐을 경우 누가 나서서 변론해 주거나 힘이 되어 줄 수도 없다.

어떤 일이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러서 하는 일은 위험 천만하다. 월스트리트 투자은행 살로먼 브라더스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월스트리트 최고 두뇌들의 머니 게임을 그려낸 <라이어스 포커>의 저자이자,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마이클 루이스는 <머니볼>에서 이런 말을 했다. "뭔가를 꼭 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이미 끝장난 것과 다름없다. 형편없는 거래를 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선수와의 계약 실패로 말미암은 충격에서는 쉽게 회복할 수 있지만, 터무니없는 가격에 계약한 선수 때문에 받은 충격에서는 쉽사리 회복하지 못한다." 

기업을 성공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좋은 제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런 제품을 만들어 내는 조직 프로세스에 있다. 마감시한을 얼렁뚱땅 넘기려는 태도는 실패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제 아무리 당구의 신이라고 하더라도 공을 쳐서 최소한 쿠션에 세 번 이상을 맞춰야 게임이 끝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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