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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진 NOW ]
  • 입력 2017.06.12 09:06

회의할 때 다같이 들었잖아?

기업커뮤니케이션 #1

 

▣ 머릿속의 기억, 과연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직장인들은 일년 중 3의 배수의 달을 좋아하지 않는다. 6의 배수도 마찬가지다. 연말은 말할 것도 없고, 분기와 반기에 이르면 뭔가 점을 찍고 넘어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 중 반기와 연말이 더 부담스럽다.

회사 상황이 잘 풀릴 때야 괜찮지만 불경기가 언제 끝날 지 기약 없는 상황, 사업계획을 되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담스런 시점이 일년 중 절반이 꺾어지는 즈음이다.

그런데 이 시기쯤 어이없는 촌극이 펼쳐지곤 한다. 연말에 각 계열사, 사업부 그리고 팀 별로 사업 계획을 세우고 결의도 다졌고, 수 개월간 열심히 달려왔다. 한참 만에 다시 모인 자리에서 여러 아젠다를 되짚어 본다. 결론에 대해서는 동일한 입장인데, 사람들마다 중간 중간 기억하고 있는 정황이 조금씩 달랐다. 분명히 연말에 한 자리에 모였던 사람들임에도 디테일에서는 엇갈리는 입장이었다.

“그때 한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죠.”

“기록을 해둬서 제가 분명히 알고 있는데요. 그때 상황은 이렇습니다.”

각자 다이어리에 메모도 해 뒀고, 분명히 기억난다고 하는데도 참석한 각 팀장들이 표명하는 입장에는 차이가 있었다. 다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기가 막힌다는 듯 한 마디씩 했다. 그런데 그때 회의를 주관했던 본부장이 한 말이 더 가관이었다.

“아니 다들 그때 뭔 생각들을 하고 있었던 건가? 내가 한 말은 말야,,,,,,,,,.”

희한하게도 기억이 엇갈렸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이로운 쪽으로 기억하는 법이다. 의도 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모두의 기억이 조금씩 조작된 듯 했다.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는 데에 한참 걸렸다. 결국 사람들은 지난 연말에 내린 결론은 무시한 체 다시 합의하고 다음 회의를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 ‘라쇼몽 효과’에 빠진 사람들, 기억도 조작돼

자신의 기억을 믿는가? 이 기억과 관련해 유명한 영화가 있다. 산적, 죽은 사무라이와 그의 부인 그리고 그들을 지켜봤던 나무꾼, 이 네 사람이 한 사건을 두고 증언을 하는데, 모두의 얘기가 조금씩 엇갈린다. 심지어 영매를 통해 불러온 죽은 사무라이의 귀신조차도 사실이 아닌 부분이 있다.

산적은 부인을 탐했다는 것을 숨기고 정당한 대결에서 사무라이를 죽였다는 것을 주장한다. 부인은 자신이 어쩔 수 없이 치욕을 당했고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았음에 대한 정당함을 주장하는 반면, 귀신이 되어 나타난 사무라이는 자신이 일개 산적에게 패하여 죽임을 당한 부끄러움을 숨기기에 급급하다. 그나마 객관적 입장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나무꾼마저도 보석 박힌 부인의 단도를 훔쳤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애를 쓸 뿐이다. 저마다의 입장에서 미묘하게 진실을 위장하고 있는 것이다.

죽기 전에 봐야 할 명화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 영화 중의 하나인, 일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1950년에 제작한 ‘라쇼몽’이라는 영화다. 한 사건에 대해 이렇게 서로의 증언이 달라지는 이유는 각자의 입장에 따른 기억의 조작에 의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로사와 감독이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어 한 주제이고 이를 ‘라쇼몽 효과 (Rashomon Effect)’라고 한다.

구로사와 감독은 그의 저서 <자서전 비슷한 것>에서 ‘인간은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다. 허식 없이는 자신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죽어서도 마찬가지다’고 했다. 그래서 라쇼몽이라는 영화는 허식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란 존재를 그렸고, 죽어서까지 허식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는 인간의 뿌리 깊은 죄를 그렸다. 덕분에 1951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그랑프리 수상에 이어 이듬해 제24회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누구도 이런 기억의 조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불과 반년 전에 합의했던 내용들을 각론에 있어서 각 팀이나 사업부는 서로의 입장에 유리한 점들을 더 기억하게 된 것이다.

비단 여러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검찰 수사관으로 오랜 경력을 가진 어느 선배의 경험을 통해서도 각색된 기억을 가진 사례를 여러 번 들었다. 선배 본인은 거짓말 탐지기를 써본 적은 거의 없다고 하는데, 공대를 나온 동기가 지금은 국내 최고의 거짓말 탐지기 전문가로 손꼽힌다고 한다.

범인의 기억에 있어서 이미 자신이 유리한 대로 디테일한 부분에서 철저히 각색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는 거짓말 탐지기조차 무용지물로 만든다고 한다. 때문에 노련한 수사관들은 기계를 미더워 하는 것이 아니라, 심문에 임하기 전에 철저하게 잘 짜인 시나리오가 관건이라 한다. 사전 질문을 통해 범인의 반응을 잘 살피고 과학적인 인과 관계에 의한 심문 기술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칵테일파티 효과’에 빠지기도 하는 사람들

얼마 전에 본부장과 둘이서 한 사안을 두고 심각한 논의를 가졌다. 그리고 실행 중간 점검하는 미팅자리였다. 불과 두 주가 채 지나지 않아서 마련된 초기 상황을 보고하고 점검 했는데 내밀었던 보고서를 보고 본부장이 한 마디 했다.

“참 이상한 습관이야. 그날 내가 여러 가지를 얘기 했는데, 어째 여기엔 그 중 일부만 언급되어 있냐?”

왜 듣고 싶은 것만 듣냐는 질책이었다. 듣고 싶은 것만 들은 것이 아니었다. 이야기 했던 내용을 다 메모했고, 중요하다 싶은 것을 빨리 실행에 옮겼고 그 중간 내용을 보고한 것이었다. 비록 내 뱉지는 못했지만 속에서 올라온 말이 있었다.

‘본부장님은 직접 말씀을 다 하시고도 어째서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십니까?’

커뮤니케이션의 많은 문제들이 여기서 발생되기도 한다. 똑 같은 사안을 보고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재주가 누구에게나 있다. 이런 상황은 ‘칵테일파티 효과(Cocktail Party Effect)’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수 많은 사람들이 파티장에서 삼삼오오 대화를 나눈다. 처음 파티장에 들어서면 웅성대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지만, 어느 순간 눈 앞에 등장한 아리따운 미인의 목소리는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가 하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얘기라면 또 저절로 들린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앞두고 단원들이 연습실에 모여서 저마다의 악기로 연습을 하고 있다. 연습은 서로 맞춘 합주가 아니어서 보통 사람들은 어지러운 소음 외엔 들리지도 않지만 각각의 연주자들은 자기 악기의 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골라서 들으려 하지 않지만 자기 팀에 연관되는 사항에는 더 집중된다. 때문에 ‘서로 잘 통한다는 것’은 보고 싶은 것과 기억하고 싶은 것이 겹치는 교집합이 큰 사람들이다. 같은 방향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질문을 받아주고 결론을 재확인하며 처음부터 공유하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관계가 바로 답이다. 사전에 공유된 것이 많을수록 보고 기억하는 점들이 일치하게 된다. 그런 조직일수록 성공확률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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